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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生 과 死의 境界에서
풍경외 /여행

포항 오덕리 (浦項吾德里) 덕동문화마을

by wolf 2022. 5. 15.

소  재  지 :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245

             덕동문화마을은 1992년 국가로부터 제15호 문화마을로, 2001년에는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문신 정문부가 종전 후 전주로 돌아가면서, 재산 모두를 손녀사위인 사의당(四宜堂) 이강에게 준 것을 계기로 이강이 터를 잡아 형성되었다.이곳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전미를 자랑하는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북민속자료인 애은당고택과 사우정고택, 경상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계정 등이 있는 곳이다. 특히 마을의 맑은 저수지와 계곡 사이에 있는 소나무 숲은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상에 선정된 곳으로, 200년생 은행나무와 160년생 향나무 등 다양한 고목이 자라고 있다. 집성촌 대대로 내려온 유물들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덕동민속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단 2개가 보존돼 있다는 독(과학 단지)을 볼 수 있다.

입구 소나무 숲

여연당 고택(與然堂 古宅)

문화재 지정 :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06호로 지정(1988년 9월 23일)

              이 가옥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였던 집이다.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 후 손서인 이강에게 별옥 일체를 양여할 때의 부속건물 중의 일부로서 이강의 둘째아들인 이덕령에게 물려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2016년 현재 소유자인 이원돌은 이강의 9대손이다.

정면 4칸, 측면 6칸의 목조와가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에 창건한 건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사우정고택(四友亭古宅)

문화제 지정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1호

건립시기 : 16세기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1호.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던 정문부(鄭文孚)의 할아버지 정언각(鄭彦慤)이 청송부사(靑松府使)로 재직할 때 길지를 일러주는 사람이 있어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정문부의 손자사위인 사의당(四宜堂)이강(李壃)에게 이 집을 주었고 그의 셋째 아들 이덕삼(李德三)이 살림집으로 물려받았다. 그의 손자 이헌순(李憲淳)의 아호를 따 집의 당호를 사우정(四友亭)이라 했다. 안채와 사랑채가 현존하는데, 특히 안채는 임진왜란 이전의 기법을 남기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치에서도 날개집의 T자형이긴 하나 |부분과 一부분이 분리되어 있다. 안방이 1칸이면서도 앞에 툇마루가 없고, 방의 안마당에 면한 창의 얼굴은 안동 임청각 등에서 볼 수 있는 연귀한(면과 면을 맞추려고 문짝 등의 귀 끝을 모질게 엇벤) 맞춤의 도끼별(원목을 산판에서 도끼로 제재한 것) 구조를 보이고, 대청 기둥은 모기둥이면서도 흘림을 주어 고대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색은 건넌방이 없다는 점이다. 방 대신에 내고(內庫)가 시설되어 있고 옛날 독들이 가득하다. 이 집이 있는 지역은 옛날의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다. 부곡에서는 도자기를 비롯한 경공업의 제조가 활발하였다.

이웃한 죽장부곡(竹長部曲)에서는 무쇠 솥 등 비교적 중공업에 속하는 제품을 만들고, 임진왜란 때 사용한 진주성 전투의 비격진천뢰를 제작했다고 전할 정도였다고 하니, 성법부곡의 경공업과 잘 조화되던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부곡은 경주부(慶州府)에 소속되었었다.

오덕동은 부곡을 관리하는 이들이 집단으로 대대로 살던 곳이며 그 가운데 사우정이 입향 시조 이래 우두머리 구실을 하고 있었고, 임진왜란 이전부터 부곡이 해체되던 시기까지 그 기능을 수행하였다. 안채 |형과 분리된 一형에 사랑채가 있다. 이 건물은 근세에 중건된 것이어서 안채와 같은 학술적인 가치에는 이르지 못한다.

사우정 고택(四友亭古宅)

문화재 지정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1호

건립시기 : 16세기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1호.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던 정문부(鄭文孚)의 할아버지 정언각(鄭彦慤)이 청송부사(靑松府使)로 재직할 때 길지를 일러주는 사람이 있어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정문부의 손자사위인 사의당(四宜堂)이강(李壃)에게 이 집을 주었고 그의 셋째 아들 이덕삼(李德三)이 살림집으로 물려받았다. 그의 손자 이헌순(李憲淳)의 아호를 따 집의 당호를 사우정(四友亭)이라 했다. 안채와 사랑채가 현존하는데, 특히 안채는 임진왜란 이전의 기법을 남기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치에서도 날개집의 T자형이긴 하나 |부분과 一부분이 분리되어 있다. 안방이 1칸이면서도 앞에 툇마루가 없고, 방의 안마당에 면한 창의 얼굴은 안동 임청각 등에서 볼 수 있는 연귀한(면과 면을 맞추려고 문짝 등의 귀 끝을 모질게 엇벤) 맞춤의 도끼별(원목을 산판에서 도끼로 제재한 것) 구조를 보이고, 대청 기둥은 모기둥이면서도 흘림을 주어 고대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색은 건넌방이 없다는 점이다. 방 대신에 내고(內庫)가 시설되어 있고 옛날 독들이 가득하다. 이 집이 있는 지역은 옛날의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다. 부곡에서는 도자기를 비롯한 경공업의 제조가 활발하였다.

이웃한 죽장부곡(竹長部曲)에서는 무쇠 솥 등 비교적 중공업에 속하는 제품을 만들고, 임진왜란 때 사용한 진주성 전투의 비격진천뢰를 제작했다고 전할 정도였다고 하니, 성법부곡의 경공업과 잘 조화되던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부곡은 경주부(慶州府)에 소속되었었다.

오덕동은 부곡을 관리하는 이들이 집단으로 대대로 살던 곳이며 그 가운데 사우정이 입향 시조 이래 우두머리 구실을 하고 있었고, 임진왜란 이전부터 부곡이 해체되던 시기까지 그 기능을 수행하였다. 안채 |형과 분리된 一형에 사랑채가 있다. 이 건물은 근세에 중건된 것이어서 안채와 같은 학술적인 가치에는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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