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주 삼충각(綾州三忠閣)
소 재 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산 33-1
문화재 지정 : 전라남도 기념물 제77호(지정일 : 1985년 2월 25일)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최경회와 문홍헌, 그리고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해남에서 전사한 조현 등 능주 출신 세 사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685년(숙종 11)능주향교의 유림들이 세운 3동의 정려건물이다.
좌측 건물이 최경회, 가운데가 조현, 우측이 문홍헌의 정려인데, 그 구조양식은 모두 동일하여 정면 1칸, 측면 1칸의 간단한 양식이고, 도로에서 4m 정도 높은 암벽위에 나란히 서있다.
최경회(1532∼1593)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의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창의사, 김천일과 함께 분전하다가 순국하였다. 후일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영조 때 충의의 시호가 내려졌다.
문홍헌(1539∼1593)은 임진왜란 때 고경명을 따라 금산싸움에 참가하였고 뒤에 최경회의 막하로서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조현(?∼1555)은 1555년(명종 10)의 을묘왜변 때 절제사로 있으면서 전라남도 해남지방에 침입한 왜구들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절변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능주 삼충각은 지석강 상류 천변의 높은 절벽위에 3동으로 건립되어 있다. 보통 3인을 동시에 정려할 때 단일 건물을 3칸 규모로 하는 이 지역 정려각과 크게 구별된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관계로 주변에서 쉽게 식별되며 바로 아래에 도로가 개설되어 접근이 용이하다.
3동 모두는 거의 비슷한 구조의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비(碑)없이 정려현판만 걸려 있다. 건물 4면에는 모두 홍살이 꽂혀져 있는데 이는 정려각 등 비각건물의 특징이다. 홍살은 보통 경건과 함께 구별된 곳을 뜻하는 상징적인 장식부재이다.
구조는 막돌초석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걸은 3량가이며 공포는 중앙의 정각만 초익공식으로 하였고 나머지는 2익공식으로 꾸몄다. 3동 모두 처마 높이가 120~160cm 정도로 매우 낮고 건물 또한 간결하다.
삼충각 밑 암벽에 기록된 " 성화명로수축 시주목록 압각기문(도기념물 제162호)에 의하면 1485년(조선 성종16)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길이었다. 바위군 전체 암벽에는 선정비등 총 13개 소의 명문이 개겨져 잇고, 가군 지역에는 7개소에 비문 등이 새겨져 있다. 비의 내용은 조선시대 능주목이었을 당시 파견된 목사들이 선정 내용과 도로 수축 관련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