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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일지암

wolf 2012. 3. 14. 20:10

 

 

초의스님은 대둔사 본당의 쾌년각에서 살다가 1824년에 두륜봉 기슭에 암자 한채를 지어 이사했다.

이곳이 바로 일지암이며 이후 일생을 대부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일지암이라는 재호의 유래는 당나라의 한산자스님이 말씀하시길 '늘 생각하노니 뱁새도 외가지에서 몸을 안존하고 사노라에서 끌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재호에서의 느낌처럼 일지암은 말이 암자이지 사방 아홉자의 토굴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소나무, 대나무 수양버들 풀꽃과 섬돌, 향로봉 밑 오도재 넘어로 보이는 바다, 봄이면 피어나는 영산홍, 뒷편에 목축일 만큼 흐르는 유천등이 차의 도구이고 말벗이며 친구였다.

초의스님은 다신전의 기초자료가 된 만보전서의 채다론을 지리산 칠불암에서 등초하였고 1830년 이를 정서하였다. 이것이 현존하는 차생활의 지침서인 다신전이다. 그후 1837년 차생활의 멋과 우리 차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이곳 일지암에서 동다송을 편찬했다. 1866년 8월2일 나이81세에 이곳 일지암에서 입적하였다. 일지암은 초의스님이 40여년간 기거하면서 다선일여사상을 실천한 도량이다.

지금의 일지암은 여러 뜻있는 다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1백년만에 복원한 것이다.

1979년 6월5일 공사를 시작하여 80년 4월 6일 낙성식을 가졌다. 설계는 에밀레박물관장이었던 조자용박사가 맡았다. 모실 6.5평짜리 1동과 15.3평짜리 초의모정와가1동이다.

초가는 다실로 일지암이라는 현판이 쓰여 있는데 현판글씨는 강암선생님의 글씨다. 초당은 총16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기둥에 10개의 주련(기둥에 붙어있는 글씨)이 붙어 있다. 주련의 내용은 31송의 내용으로 되어있는 동다송의 내용들이다.

연못과 조화를 이루는 기와집은 자우홍련사라 하는데 지금의 법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이곳에 부처님을 모셨다. 현재는 법당과 산죽지붕을 하고 있는 차향기나는 집이라는 설림당이 함께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