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석성
남성석성 입구
석성입구에서본 전경
성 누각에서본 전경
석성에서본 성누각
석성풍경
석성에서본 성누각
석성에서본 성내 전경
성 앞 해자에 있는 쌍홍교
남도 석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 함으로써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 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 - 중종 연간에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때 성종 - 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석성 본래의 규모는 그 둘레가 1 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그러나 영조때 석축 둘레 1 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성지가 거의 원형적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 서문 남문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다.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남도석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석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